댄 클락 오디오 코리나, 정전형 헤드폰 분야의 하이엔드 스릴러

2023. 11. 1. 16:46헤드폰

글.사진 : 루릭 (blog.naver.com/luric)


여러 제품들의 유료 리뷰를 진행하는 동안, 본인은 개인적 흥미를 따라서 특정 제품을 사용해보고 일반 후기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적으로 쓰는 후기보다 정식으로 진행하는 리뷰가 중요하니 일정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댄 클락 오디오(Dan Clark Audio)에서 두 번째 정전형 헤드폰 '코리나(CORINA)'를 출시한 후 드디어 국내로 들어오자, 곧바로 판매처에 문의하여 직접 사용해보겠다고 제안했다. 한 번 듣고 나니 양이 차지 않아서 또 한 번 방문하여 제대로 된 시스템과 함께 코리나의 소리를 듣고 감상평을 메모했는데, 그게 올해 여름이었고... 이제 곧 가을이 끝나는 오늘이 되어서야 당시의 메모를 정리하여 후기를 올린다.


코리나는 정전형 헤드폰이고, 정전형 헤드폰은 전용 에너자이저를 내장한 앰프로만 구동할 수 있다. 본인은 정전형 앰프가 없으니 판매처에서 시스템을 꾸려주었는데, 이 시스템의 총 견적이 장난 아니다. 예전에 보체(VOCE)의 리뷰에서 써봤던 '헤드앰프 블루 하와이'가 중심이며 DAC는 1차 청취에서 'dCS 바르톡 Apex', 2차 청취에서는 '메리디안 울트라 DAC'를 사용했다. 파워 케이블, 인터커넥터 케이블 등이 모두 고가의 킴버 케이블 제품이며 룬으로 고해상도 음반과 타이달을 재생한다.


이번 후기에서 그리 중요한 점은 아니지만 dCS 바르톡 Apex와 메리디안 울트라 DAC의 소리 차이를 언급해둬야겠다. dCS 기기들은 원래부터 특징 없이 사라지는 타입에 속하며 하이파이 오디오 유저들 사이에서 훌륭한 소스가 되고 있다. 메리디안 울트라 DAC는 dCS 바르톡 Apex를 쓸 때보다 중.저음이 조금 더 두텁고 소리 잔향이 늘어난 느낌을 주었다. DAC 기기의 특성이 아닌 출력 전압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직접 세팅한 시스템이 아니라서 넘어간다. 그리고 블루 하와이 앰프는...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정전형 헤드폰 유저에게는 로망이거나 필수품인 앰프인데 국내에서 쓰려면 직접 해외 주문을 해야 한다.


댄 클락 오디오 코리나는 국내 가격이 600만원대에 이르는 살벌한 헤드폰이다. 하우징과 헤드밴드 부품이 모두 금속 소재이며 독특한 그릴 문양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익스팬스에서 보았던 고급진 가죽 헤드밴드와 니켈 합금 소재의 초경량 와이어가 헤드폰 전체의 무게를 감량해준다. 이 헤드폰을 머리에 쓰면 가격의 무게를 완전히 잊고 편안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사실은... 이 헤드폰의 가격을 남들에게 맞혀 보라고 해도 그리 높은 가격을 부르지는 않을 듯하다. 그만큼 간결하고 가벼운 헤드폰이 코리나인 것이다.


코리나는 보체와 마찬가지로 스탁스 헤드폰들의 커넥터 규격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정전형 헤드폰 앰프가 스탁스 Pro 커넥터를 지원한다면 코리나도 연결할 수 있다.



SOUND

본인이 두 번 청취해본 코리나는 아직 새것이었는데, 오래 사용해도 음색 변화는 없으며 소리가 더 자연스러워지기만 할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댄 클락 오디오는 하이엔드 헤드폰들의 번인룸을 운영하여 드라이버를 어느 정도 길들인 다음에 판매하므로 청음실의 코리나는 기본 에이징이 됐을 것이다.


*정전형 헤드폰에 '소리의 메타 물질 기술'을 더하다

 

감상문 작성에 앞서, 코리나의 새로운 셀링 포인트이며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 기술 - AMTS (Acoustic Metamaterial Tuning System)를 생각해봐야 한다. 드라이버의 진동판 앞쪽에 의도된 설계의 사운드 가이드를 배치하는데, 이 구조물에 뚫린 구멍들의 직경, 길이, 각도가 모두 소리에 작용한다. 음파의 속성을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어서 댄 클락 오디오는 AMTS를 '소리의 메타 물질 기술'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는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의 하이엔드 모델인 스텔스, 익스팬스가 각자 최적화된 형태의 AMTS 부품을 지니고 있다.


정전형 헤드폰은 물리적 구조가 아주 간단한 편이다. 혹시 직접 살펴볼 기회가 있다면 조명에 이어컵 안쪽을 비춰서 살펴보자. 진동판과 필터 소재를 빼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정전형 드라이버는 전기를 직접 사용해서 진동판을 움직이므로, 다이내믹이나 평판형처럼 진동판에 자석을 배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댄 클락 오디오는 정전형 드라이버의 진동판 앞에 전용 설계의 AMTS를 더해서 소리 변화를 만들었다. 아래의 도안처럼, 넓은 면적의 원형 진동판 중에서 사람의 귓바퀴 영역에만 구조물을 더한 모습이다.


*단단하고 깊은 저음 펀치, 굵고 강력한 고.중음 = 댄 클락 오디오의 소리


AMTS는 저음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낮은 고음부터 초고음 영역까지를 세밀하게 조절하며 공간감도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 분명히 평탄한 소리인데 첫 청취부터 여러 가지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정전형도 평판형도 아닌 댄 클락 오디오의 소리다. 코리나는 정전형의 강점인 초고해상도와 완벽한 균형을 지니되, '더욱 단단하고 깊은 저음 펀치'를 만들며 스텔스와 익스팬스처럼 댄 클락 고유의 '매우 굵고 강력한 고.중음'을 들려준다.


이전 모델인 보체(VOCE)를 떠올려봐도 결과는 동일하다. 코리나는 보체보다 고.중음이 더욱 정밀하고 힘차며 저음 펀치가 더 크고 단단하다. 즉, 소리 전달 능력에서는 코리나가 확실히 상급이지만, 소리 듣기가 더 편안한 쪽은 아무래도 보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이버 종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코리나는 스텔스, 익스팬스의 소리 특징을 상당히 물려받은 듯하다. 같은 개방형 헤드폰으로서 익스팬스의 소리 기억과 비교한다면, 코리나는 익스팬스와 기본이 매우 흡사한데 소리의 규모와 공간을 더 크고 넓게 만든 셈이다.


*소리 전달자(트랜스듀서)로서는 사실상 최강


코리나는 '고도의 정밀함'과 '굵고 강한 힘'을 모두 지니고 있다. 혹시 정전형 헤드폰으로 스탁스 제품만 사용해왔다면 코리나의 소리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혹시 평판형 헤드폰만 사용해왔다면 코리나의 정교한 고음과 초광속 수준의 응답 속도에 놀랄 것이다. 또한 소리가 머리 좌우 바깥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물리적 공간 효과가 크다. AMTS로 공기 흐름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이것이 귓바퀴에 확산되면서 공간감을 늘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전형 헤드폰이므로 헤드폰 자체에서 뭔가 음색 변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헤드폰'의 시작이 정전형 헤드폰이었음을 기억하자. 무음색 무특성을 기반으로 하여 댄 클락 오디오 고유의 '어떤 것'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다.


초고해상도와 극한의 음 분리 능력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헤드폰 드라이버의 성능 잠재력이 엄청난 수준이므로 반드시 하이엔드 DAC를 소스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 라우드 스피커가 아닌 헤드폰이므로 DAC 업그레이드의 효과를 귀 바로 옆에서 체감할 수 있다. 매우 빠른 응답 속도가 그야말로 광속이라고 하겠다. 극한의 깔끔 건조 사운드로, 코리나에서 포근한 잔향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음반 속에 원래 소리의 잔향이 들어 있다면 그 잔향이 최대한 깨끗하게 재생되는 것이다.


거의 완벽한 고.중.저음 균형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실제 측정에서는 거의 평탄한 주파수 응답이겠지만 청취에서는 초고음, 고음, 중음, 저음, 초저음의 다섯 개 영역이 모두 조금씩 강조된 듯한 느낌을 준다. 드라이버의 속성과 AMTS의 의도적 조정으로 인해 각 음 영역이 더 강하고 뚜렷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사람 목소리이든 악기 소리이든 실내 공간에서 독창, 독주되는 음반을 들으면 매우 가깝고 명료하며 정밀하게 분해되는 느낌을 받는다. 위치를 본다면 중음 비중이 높은 소리가 앞으로 다가오는 편이며, 선이 굉장히 굵어서 사람 목소리의 내부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까지 하게 된다.


*고막과 두개골을 때리는 저음, 공기를 뿜어주는 초고음


코리나를 스탁스 앰프와 함께 사용하는 것과 본인이 청취한 블루 하와이 앰프를 쓰는 것은 소리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공통적으로 나올 듯하다. 고음, 중음, 저음이 모두 굵은 선을 지니며, 특히 중음 영역 전체가 더 보강된 인상을 준다. 저음은 초저음까지 평탄한데 높은 저음의 펀치가 돌덩이 수준이다. 굉장히 묵직하고 강력하며 빠르게 끊어서 치는 방식으로 고막과 두개골을 때린다.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어보았던 스탁스 헤드폰들, 정식 리뷰를 했던 오디지 CRBN과 댄 클락 오디오 보체까지 생각해봐도 코리나의 굵은 소리와 강렬한 펀치는 각별한 수준이다. 이 헤드폰이 원래 이렇다는 뜻이다.


정전형 헤드폰은 평판형 자석 드라이버 헤드폰보다 저음 펀치가 약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댄 클락씨는 그 개념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딱히 저음을 강조하지도 않았는데 청취자의 이마를 바위에 찍는 듯한 타격을 만든다. 그리고 초저음은 진동의 에너지가 얇은 막을 이루면서 귀 아래로 낮게 깔린다. 초고음의 비중이 높은 것도 하이엔드다운 장점이다. 공기 느낌이 확 살아나면서 숨이 트인다. 평탄한 소리는 심리적 공간을 확장하기가 어렵지만, 코리나는 AMTS를 사용해서 물리적 공간 확대 효과를 뚜렷하게 지닌다. 수평선으로 넓게 펼쳐지는 깨끗한 사운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이 헤드폰의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댄 클락 오디오 코리나는 정전형 헤드폰 유저들 사이에서도 취향을 탈 만한 제품이다. 더 쉽고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스탁스 정전형 헤드폰의 소리가 뭔가 심심해서 그 다음 단계의 신선함을 느끼고 싶은 유저에게 적합하다고 본다.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만큼 새롭고 강렬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 이렇게 생각한다면 코리나가 기대에 부응할 확률이 높다.


1) 굵고 단단하고 강한 소리. (정전형인데!)

2) 다른 종류의 헤드폰들보다 저음이 평탄하다.

3) 조금도 양념을 치지 않은 건조한 음색.


즉, 코리나는 날것의 자연 재료를 추구하는 미식가 취향의 헤드폰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댄 클락 오디오 헤드폰들 전체가 그러한 편이다.) 혹시 정전형 앰프가 있어서 이 제품을 장만할 생각이라면 편하게 쉬면서 듣는 게 아니라 잠을 확 깨우는 용도로 두자. 스피커든 헤드폰이든 이어폰이든 하이엔드로 갈수록 소리가 심심해지기 마련이지만, 코리나는 사라지는 헤드폰이면서도 소리 자체가 아찔할 정도로 힘차고 빨라서 스릴 만점이다. 이제 정전형 헤드폰 분야에도 스릴러 장르가 등장한 것이다. ■


*이 후기는 해당 브랜드의 제품 대여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