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손 시그니처 퓨어, 스튜디오 모니터 헤드폰 속에 진공관이라도 넣은 것인가?

2023. 10. 20. 18:54헤드폰

"굉장히 굵은 선의 소리. 사람의 뜨끈한 체온을 지닌 소리. 헤드폰 속에 진공관을 담기라도 한 것처럼 두터운 중.저음을 들려준다. 그런데 고음은 정밀하고 음색은 담백하다. 이 물건은 진정한 가성비 스테디셀러 헤드폰이 될 것이다."


글.사진 : 루릭 (blog.naver.com/luric)


얼마 전에 매니 마로퀸(Manny Marroquin)씨가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해서 세 시간 정도의 강연과 질문 답변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음악 소비자인 우리는 잘 모르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매니 마로퀸은 팬들의 환호를 받는 월드 스타라고 할 수 있다. 본인도 그러한 아마추어와 프로의 사운드 엔지니어들 사이에 앉아서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 여러 관객의 질문 중에서 '모니터로 어떤 제품을 선호하느냐'는 종류의 질문이 나왔다.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쓰는 모니터는 스피커이든 헤드폰이든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세요. 단, 그 모니터의 소리 특징을 자신이 완전히 파악해서 마치 손발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애인이나 가족처럼 모든 것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는 거죠.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한 식으로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건 헤드폰 MM-500을 은근슬쩍 추천하는 그였다. (-_-)b


헤드폰을 손발처럼 다룬다! 스튜디오 모니터 헤드폰이 자신의 특색을 내지 않으며 음악 속의 요소를 쉽게 보여준다면 사운드 엔지니어가 헤드폰을 파악하는 과정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이것이 스튜디오 헤드폰이라는 제품 분류의 기본인 듯하다. 울트라손(Ultrasone)의 뉴 모델, '시그니처 퓨어(Signature Pure)'도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청취자의 감정을 움직이기 위한 음악적 튜닝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헤드폰 가격을 비싸게 매길 필요도 없다. 울트라손은 초고가 하이엔드 모델과 더불어 부담없는 가격대 성능비 모델도 점차 늘려가는 중인데, 시그니처 퓨어는 헤드폰 라인업에서 실질적인 '입문용 스테디셀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볍고 편안한 올블랙 밀폐형 헤드폰

울트라손 시그니처 퓨어는 기본적으로 프로 오디오 제품이지만 일반 유저들에게도 올라운더 음악 감상용 헤드폰으로 타겟팅된 모델이다. 최소한 이 헤드폰을 한 달 가까이 사용한 본인의 생각은 그렇다. 가격대 성능비가 중요한 만큼 시그니처 퓨어의 패키지는 간단하다. 박스 속에 큼직한 지퍼 파우치가 하나 들어 있는데, 이 파우치를 열면 헤드폰 본체와 탈착식 코일 케이블이 나온다.


시그니처 퓨어의 지퍼 파우치는 아주 실용적인 느낌을 준다. 제품을 자랑하는 용도가 아니라 실제로 헤드폰을 담고 다니며 보호하는 '케이스'의 역할을 수행한다. 파우치 내부는 푹신하고 부드러운 극세사 쿠션이라서 헤드폰에 흠집날 일이 없겠다. 단, 파우치의 크기가 헤드폰에 딱 맞춰져 있어서 헤드폰을 수납할 때마다 케이블을 이어컵에서 분리해줘야 한다.


탈착식 코일 케이블은 헤드폰 쪽이 2.5mm 커넥터, 재생기 쪽은 3.5mm 커넥터로 연결되며 나사 방식으로 덧끼우는 6.35mm 변환 젠더가 포함된다. 이 케이블은 커넥터가 튼튼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케이블 탈착을 해도 되겠다. 헤드폰의 왼쪽 이어컵에 완전히 탁 끼운 후 플러그를 한 쪽으로 살짝 돌려주면 고정된다. 이 때 2.5mm 커넥터를 헐렁하게 끼우면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주의하자. '탁'하고 클릭이 들릴 때까지 밀어서 끼워줄 것!


이 코일 케이블은 기본적으로는 1.3미터 정도의 길이로 있다가 유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한대(?)로 쭉쭉 늘어난다. 스튜디오 안에서 믹싱 콘솔에 헤드폰을 연결해두고 이리 저리 이동하며 작업하는 상황에 적합한 케이블이다. 본인의 경우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들으면서 방 안을 돌아다닐 때 유용한 케이블이었다.


시그니처 퓨어의 디자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무광택의 올블랙 헤드폰이 되겠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딱 맞아서 이 때부터 제품 구입을 심히 고민하게 됐다. 이 제품은 20만원대 이하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헤드폰인데도 제법 고급스러운 외양을 보여준다. 특히 이어컵 표면의 시그니처 시리즈 데코가 마음에 든다. 훨씬 비싼 가격의 상급 시그니처 시리즈들과 동일한 디자인의 데코레이션 플레이트인데 올블랙 색상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그니처 퓨어는 독일 생산품이다.


이어패드는 벨루어(Velour) 소재로 보인다. 헤드밴드는 바깥쪽이 벨루어 소재인 듯하고 머리에 닿는 안쪽은 뽀송한 메쉬로 되어 있다. 장기간의 착용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통풍을 고려한 헤드밴드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어패드 구조를 보니 다른 헤드폰들처럼 테두리 부분을 잡아당겨서 분리하고 새 이어패드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이어패드 수명이 끝나도 쉽게 교체해서 쓸 수 있겠다.


헤드밴드 길이가 넉넉하게 늘어나서 머리 큰 사람도 착용할 수 있다. 다른 울트라손 시그니처 시리즈와 동일한 규격의 헤드밴드라서 울트라손 헤드폰을 써본 분들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또한 프로 오디오용 헤드폰 답게 눈금으로 길이 표시를 해놓았다. 이어컵을 평평하게 눕힐 수 있으며 완전히 폴딩할 수도 있어서 수납과 휴대가 편리하다.


플라스틱 소재의 헤드폰이지만 쉽게 망가지지 않도록 내구성에 신경 쓴 느낌을 준다. 직접 손에 들고 늘리거나 구부려봐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무게가 가벼워서 머리에 쓸 때 중량감이 거의 없다. (진짜로 가벼운 헤드폰이다! YES!!) 이어패드가 귀 둘레로 단단히 밀착되도록 헤드밴드 장력이 강하게 되어 있는데 이어패드 쿠션이 하도 푹신해서 머리가 편안하다. 다만... 다른 울트라손 헤드폰들과 마찬가지로 헤드밴드가 펼쳐졌을 때의 모습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위대한 요다 스승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차피 실내에서만 쓰게 될 헤드폰이므로 괜찮다! (...)


이어패드의 안쪽을 살펴보면 울트라손 헤드폰들의 S-Logic 3 구조가 보인다.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이어컵의 아래쪽에 배치하거나 진동판의 아래쪽만 개방해서 소리가 귓바퀴에 골고루 반사되도록 하는 설계다. 시그니처 퓨어는 울트라손의 프로 오디오 헤드폰 중에서 가장 저렴한 엔트리 모델인데 그래도 확실하게 S-Logic 3가 적용되어 있다.



SOUND

울트라손 시그니처 퓨어는 50mm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사용하며 주파수 응답 범위는 10~40,000Hz라고 한다. 제품 상세 페이지에 별다른 정보가 없어서 이 정도만 짚고 넘어간다. 직접 사용해본 바로는 아주 쉽게 구동할 수 있는 헤드폰이라서 스마트폰이나 DAP의 헤드폰잭에 바로 연결해도 되며 PC용 헤드폰으로 써도 될 만큼 매칭이 쉬웠다. 그러나...!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모니터로 사용하는 헤드폰이라면 대부분 든든한 출력의 앰프나 앰프 내장형 기기에 연결되기 마련이다. 여러분이 홈 레코딩할 때 쓰는 오디오 인터페이스 기기의 헤드폰 출력도 포함된다. 스튜디오 헤드폰들은 대체로 드라이버 감도가 높게 설계되지만, 그래도 거치형 헤드폰 앰프로 힘을 보강해서 듣는 쪽이 더 인상적인 감상으로 이어진다. 재생기나 DAC 장치의 출력 전압을 확인하고 헤드폰 앰프로 빵빵하게 들으면서 소리를 감상하거나 분석해보자.


*밀폐형 구조에서 S-Logic이 만드는 입체감


첫 청취부터 울트라손의 S-Logic 기술이 만드는 특이한 소리 공간이 부각된다. 귓바퀴로 들어오는 소리의 방향과 넓이가 이어컵과 이어패드 내부에서 약간 간접적으로 맴도는 느낌이다. 음악 감상 후 몇 초도 되지 않아서 금방 적응할 수 있으니 안심하시라. 또한 S-Logic은 공간감을 만들기 어려운 밀폐형 헤드폰에서도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오는 듯한 입체감을 형성해준다. 그래서 시그니처 퓨어는 녹음실 내부 정도의 공간감을 지녔으나 음악 속 악기들이 연주되는 위치를 상세히 묘사할 수 있다.


*모니터 헤드폰의 특징을 발견하는 손쉬운 방법 = 비교 청취


프로 오디오 세계에서는 장비 구입 비용이 중요한 팩터이므로 모니터 헤드폰들의 가격은 대체로 비싸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역시, 모니터 헤드폰들 사이에서도 훨씬 높은 해상도와 더욱 정확한 음색 등의 강점을 지닌 하이엔드 모델이 존재한다. 주파수 응답 형태에서도 하이파이 오디오와 통하는 특징이 있는데, 가격대가 낮은 모니터 헤드폰들의 소리는 고.중.저음이 각각 강조된 W 모양이 많고, 아주 비싼 하이엔드 모니터 헤드폰들은 심심할 정도로 매우 평탄한 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급형 모니터 헤드폰은 주로 보컬리스트와 연주자들이 사용하고, 하이엔드 모니터 헤드폰은 믹스를 직접 편집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사용할 수 있다.


본인은 매우 평탄한 소리의 하이엔드 모니터 헤드폰으로 오디지 MM-500을 쓰고 있으니 이 물건은 잠시 뒤로 밀어두겠다. 그보다는 울트라손 시그니처 퓨어와 바로 비교해볼 만한 모니터 헤드폰으로 소니 MDR-7506(13만원)과 오스트리안 오디오 Hi-X15(17만원)를 투입해본다. 정가로 치면 20만원대인 울트라손 시그니처 퓨어가 조금 더 비싸지만, 할인 이벤트나 공동 구매 가격으로 치면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세 대를 비교하는 이유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모니터 헤드폰들 사이에서도 소리 성향이 뚜렷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각자 듣고 있으면 '음색 특징이 없고 각 음 영역이 잘 들리는 헤드폰'인데, 서로 비교하면서 들으면 다들 음색 특징이 있거나 특정 음 영역이 더 강조되어 있다.


왼쪽이 소니 MDR-7506, 오른쪽이 오스트리안 오디오 Hi-X15. 스튜디오 헤드폰에서 발생하는 클래식과 모던의 대조라고 할 수 있겠다.

MDR-7506은 확실히 보컬 파트가 강하고 굵게 들린다. 고.중.저음의 균형이 좋은데 중음이 더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높은 중음도 센 편이라서 치찰음 강조가 명확하다. 그리고 은근한 저음 강조가 있어서 배경의 저음 울림을 감지할 수 있다. (*얇은 이어패드 때문에 안경을 쓰거나 머리칼을 두텁게 기른 사람은 저음이 약하게 들리기 쉽다.) 소리의 해상도, 공간감, 이런 것들은 비교적 평범하지만 음색이 무척 자연스럽다. 즉,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소리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일할 때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금방 적응할 것이고, 그 후에는 다른 제품에 적응하는 게 불편해서 이 헤드폰을 또 사서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1991년부터 현재까지 업계 표준으로 계속 판매되고 있는 모양이다.


Hi-X15는 뚜렷하게 고.중음이 차갑다. 고음 일부 영역이 강조됐으며 낮은 고음도 피크(뾰족)가 있어서 소리가 명확한 만큼 시원하고 자극적인 면이 있다. 강력한 청량감을 지닌, 헤드폰계의 고강도 탄산수라고 하겠다. 음악 감상용 헤드폰들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헤드폰들 사이에서도 더욱 차가운 소리에 속한다. 이렇게 고음을 살린 만큼 소리 해상도가 더욱 높아지며 음을 촘촘하게 나누는 분리 능력이 좋게 된다. 중음과 저음도 각각 조금씩 강조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평탄함에 가깝다. 사실상 대놓고 일렉트로닉 뮤직 전용으로 만든 듯하다. 전자음의 정밀한 분석에 쉽게 사용될 수 있으며, 그냥 EDM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도 다른 헤드폰들보다 훨씬 짜릿하고 선명한 소리 경험을 줄 수 있다. 물론, 이런 헤드폰에도 적응해서 손발처럼 다룬다면 다른 장르의 음악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숨결이 귀 속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MDR-7506과 Hi-X15의 소리를 듣고 나서 곧바로 시그니처 퓨어를 들으니 주요 특징을 훨씬 쉽고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그니처 퓨어는 소리 선이 정말 굵다. 소리의 위치도 훨씬 가깝다. MDR-7506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컬을 굉장히 가깝고 명확하게 들려준다. 사람의 숨결이 내 귀 속으로 훅! 훅! 들어오는 기분이다. 또한 음색이 무척 담백하다. 깔끔하게 건조한 소리이며 낮은 중음과 저음 영역이 든든하게 보강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MDR-7506보다 포근한 인상을 주며 Hi-X15와 비교한다면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따뜻함이 음악 장르를 가릴 수도 있겠다. 시그니처 퓨어로 일렉트로닉 뮤직을 듣는 것은... 정밀하거나 샤프하거나 빠른 속도 같은 특징이 없어서 약간의 손해(?)가 생긴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 목소리나 현악기 소리가 많으며 자연 악기 중심으로 녹음된 곡들은 인간의 체온을 귓바퀴의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친근하고 감성적으로 묘사한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확장해주지는 않지만 클래식 악곡 속의 악기들과 합창단 목소리를 음색 왜곡 없이 두텁고 포근하게 들려주는 것도 장점이다.


*이 헤드폰을 만든 사람의 능력이 좋은 듯


블루사운드 노드 2i와 코엑시얼 연결된 그레이스 디자인 M900의 자체 헤드폰 출력을 주로 사용했다. (볼륨은 57~65 사이) 시그니처 퓨어는 젠하이저 HDVD800과도 잘 어울리지만 이번에는 그냥 프로 오디오 제품들끼리 조합해서 듣겠다는 생각이었다. M900의 헤드폰 출력에서도 시그니처 퓨어의 드라이버 진동판이 여유롭게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스튜디오 헤드폰들 중에서는 확실히 중.저음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결하는 재생기와 앰프에 따라서 다른 느낌이 될 수 있겠지만, 본인의 생각에는 시그니처 퓨어를 만든 사람이 원래 이렇게 설정한 것 같다. 십중팔구 시그니처 펄스의 사운드 튜닝을 응용해서 더 담백하게 만든 것이 시그니처 퓨어가 아닐까~하고 짐작 중이다. 고음과 높은 중음의 결이 곱게 다듬어져 있으며 낮은 중음과 저음, 초저음이 골고루 부풀어 있어서 대부분의 유저들이 포근한 소리라고 인지할 것이다. 또한 초저음 울림이 아주 명확하다. 귀 아래로 깨끗하게 울리는 초저음의 막(레이어)을 느낄 수 있다. 저음의 펀치가 높은 저음의 단단한 타격부터 초저음의 은은하고 넓은 울림까지 손실없이 전달된다.


고음의 튜닝도 훌륭하다. 이 헤드폰의 담백한 음색을 결정하면서 동시에 청각 자극을 주지 않으며, 이 가격대에서 최대한의 소리 해상도를 뽑아내는 고음이다. 중.저음 영역은 소리 선이 굉장히 굵은데 고음은 은근히 선이 가늘며 정밀한 인상을 남긴다. 조금도 밝지 않은 느낌인데 음악 속의 고음 요소들을 세밀하게 나눠서 깨끗하게 정돈한 후 고막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해준다. 혹시 헤드폰 선택에서 오로지 소리 해상도로 가격대 성능비를 결정하고 있다면 시그니처 퓨어는 이미 가격대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덤으로 음 분리도와 입체감까지 더해줄 것이다.


*좋은 점이... 너무 많다!


이 헤드폰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점은 대부분 뚜렷하게 드러나며 청취자의 두뇌에 반복적으로 각인된다. 스튜디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지는 경험은 상당히 드문 편인데, 시그니처 퓨어는 몇 가지 장점을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 좋은 점이 많다. 앞서 일렉트로닉 뮤직 감상에서 손해가 있다고 했지만 그조차도 흥겨운 저음 펀치 때문에 기분이 들뜨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1) 전체적 균형을 지키면서 낮은 중음과 저음 전체를 보강하고, 고음과 중음 영역은 자극이나 음색 변화 없이 높은 해상도와 자연스러움을 유지한다.

2) 확실히 따뜻한 소리이며 조금 어두운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귀를 기울이면 고음 선명도가 살아 있으며 음악 속의 다양한 입자들을 고스란히 관찰할 수 있게 된다.

3) 저음 펀치와 초저음 울림이 명확하다. 여러 장르의 음악이 공통적으로 지닌 '낮은 음'들을 아주 깨끗하게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음악에서 든든한 밑바탕이 되며 힙합 장르에서도 베이스 모니터링이 쉽게 될 것이다.

4) 오래 들어도 참 편안한 소리다. 저음이 풍부하며 앰프에 따라서는 강력한 펀치를 내기도 하지만 끝부분이 살짝 번지면서 고막의 부담을 줄여준다. 치찰음 강조의 원인이 되는 낮은 고음(높은 중음)을 다듬어둔 덕에 자극도 없다.

5) 현대적 성능을 갖춘 빈티지 헤드폰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그니처 퓨어는 헤드폰 속에 진공관이 담긴 듯한 소리를 낸다. 디지털 장비에서 느끼기 어려운, 아날로그 특유의 굵고 따뜻하며 아주 힘찬 소리다.


울트라손 시그니처 펄스, 내추럴, 마스터 삼총사는 각자의 소리 개성을 갖고 있다.
시그니처 삼총사와 비교한다면 시그니처 퓨어는 음색이 날것이나 다름없으며 포근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울트라손의 금은동 메달 헤드폰들을 생각해보면 시그니처 퓨어는 실질적으로 가장 담백한, 양념을 조금도 넣지 않은 소리에 가깝다. 시그니처 마스터는 화려한 음악 감상용 소리에 가깝고, 시그니처 내추럴은 기준점에 도달하면서도 소리 질감을 연마해주며, 시그니처 펄스는 매끈한 고.중음에 뚜렷한 베이스 부스트를 더한 모델이다. 이처럼 독특한 개성들을 모두 지양하는 것이... '날것의 모니터 헤드폰' 시그니처 퓨어 되겠다. 그러나! 너무 단단하거나 냉정하거나 심심한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다른 모니터 헤드폰들과 비교하면 소리의 낮은 부분이 더욱 포근하며 유난히 선이 굵고 가까운 느낌을 준다. 프로 오디오 장비 중에서도 가장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를 지닌 소리를 낸다. 즉, 흔히 말하는 '쨍한 소리의 헤드폰'은 아니므로 선택에 참조하시기 바란다. ■


*이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