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2. 14:08ㆍ케이블
"이어폰 케이블이 굵어지면, 시각적으로 화려해질 수 있으며 음악적으로 흥미롭고 색다른 소리를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퓨전(Fusion) 시리즈의 주제로 보인다."
글.사진 : 루릭 (blog.naver.com/luric)
요즘은 휴대 음향을 다들 무선 이어폰 헤드폰으로 시작할 터이니 스마트폰 헤드폰잭에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상황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오랫동안 음악을 듣거나 모바일 게임을 하는 탓에 배터리 걱정이 없는 유선 이어폰을 쓰는 분도 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무선으로 휴대 음향 생활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다수의 커스텀 이어폰을 장만해서 음질에 집중하는 저도 외출에서는 에어팟 프로를 쓰고 있으니 말 다 했지요.
그래서~. 요즘의 휴대 음향 세계에는 별도의 '유선 하이파이' 분야가 존재합니다.
이어폰을 유선으로 선택해서 쓴다는 것은 고해상도 DAP와 헤드폰 앰프를 장만했다는 뜻이고, 유선 이어폰을 굉장히 비싼 제품으로 장만한다는 것은 '소리의 즐거움'에 올인하겠다는 뜻입니다. 하이파이 오디오로 치면 재생기와 앰프를 제대로 갖춘 후 고품질의 스피커를 구입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기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케이블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게 됩니다. 좋은 케이블을 사서 이어폰에 연결하고 자리에 앉아서 음악과 소리에 몰입하는 것...! 이것이 휴대 음향의 유선 하이파이가 만드는 기본 장면입니다.
즉, 유선 하이파이를 즐기는 사람은 여기 저기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구렁이 굵기의 이어폰 케이블도 그런 이유에서 탄생했습니다. 딱히 휴대성을 따질 필요가 없으니 더 좋은 소리를 위해서 선재를 아낌없이 투입해버립니다. 그러면 케이블 가격과 함께 부피도 커지는데요. 이어폰으로 유선 하이파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굵은 케이블의 복합적 선재를 보면서 만족감과 희열을 맛보는 매니아가 더 많을 듯합니다.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그런 느낌이 오지요? 이펙트 오디오(Effect Audio)의 굵직한 이어폰 케이블, '퓨전 1(Fusion 1)'입니다.
이펙트 오디오 대표가 올린 글을 보니, 퓨전 1은 CODE 23에서 영감을 받아서 다양한 선재와 기하학적 구조, 색다른 변형을 하나의 케이블에 집약시킨 제품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내면을 해석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이어폰 유저들이 무겁고 굵은 케이블에도 잘 적응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니, 이어폰 케이블 직경의 제한에서 벗어나 '선재 혼합의 실험'을 마음껏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CODE 23은 헤드폰용 케이블을 그대로 이어폰에 사용하는 괴물급 중량의 순수 동선 케이블인데, 이번에는 퓨전 1이라는 이름으로 금, 은, 동이 혼합된 구렁이 느낌의 케이블을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퓨전 시리즈라고 하니 다음 작품도 계속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인이어 모니터(IEM) 케이블 수집가에게는 '연쇄 지름 사건'을 예고하는 이벤트가 되겠습니다.
이어폰 분야도 하이파이 오디오와 마찬가지로 '줄질'이 종착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종착역 중 하나인 이펙트 오디오는 이어폰 본체 가격보다 케이블이 훨씬 비싸게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회사 중 하나입니다. 이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퓨전 1의 국내 가격은 정가 기준 155만원이며 출시 할인 기간에 사면 더 괜찮은 가격이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고가의 이어폰을 이제 막 구입했는데 케이블 업그레이드로 새로운 느낌을 받고 싶다면 퓨전 1이 첫 경험으로 좋을 듯합니다. 음색 변화 없이 품질 향상만 하고 싶다면 CODE 23 같은 동선 케이블이 더 좋겠고요.
적층 구조로 감상하는 금색과 구리색의 혼합
이펙트 오디오는 엔트리 모델이지만 고급 케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시그니처 시리즈부터 충실한 패키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레스 S, 카드모스, 에로스 S) 시그니처 시리즈보다 등급이 높은 퓨전 1도 깔끔한 박스와 준수한 캐링 케이스가 포함될 터인데, 제가 리뷰한 제품은 아직 패키지가 없어서 케이블 본체와 ConX, TermX만 보여드리는 중입니다.
사진으로 봐도 아시겠지만... 퓨전 1은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고 화려한 케이블입니다. 그동안 제가 직접 사용해본 이펙트 오디오 케이블들은 플러그 파츠의 디자인이 각자 다르며 선재 자체의 색감으로 고급스러움을 어필했는데요. 퓨전 1은 세 가지 금속이 굵은 선 속에 들어 있어서 고급스러움의 정도가 다릅니다. 가까이 보지 않고 먼 곳에서 흠칫 보기만 해도 비싼 전선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퓨전 1은 UP-OCC 주조 공법의 금 도금 은선, 순은선, 동선을 혼합해서 만든 케이블입니다. 세 가지의 금속 선재를 기하학적 구조로 배치했는데, 먼저 중심부에 동선의 솔리드 코어를 두고 순은선과 조합된 금 도금 은선을 일정 비율의 동선과 함께 3층 구조로 결합했습니다. 이 구조는 선재들을 꼬아둔 것이 아니라 적층시킨 것이라서 한 덩어리의 선처럼 보입니다. 이펙트 오디오는 이 적층 구조에 Tri-Strata Layering이라는 명칭까지 붙였습니다. 그래서 케이블의 표면을 살펴보면 금색과 구리색이 규칙적 곡선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40개의 멀티 사이즈 코어 번들이 솔리드 코어를 감싸고 있으니 이 케이블의 굵기는 21 AWG가 됐습니다. 이어폰 케이블에서 일반적인 24~26 AWG 규격과 비교하면 구렁이 수준이며, 2심 구성이라서 직접 손에 들어 보면 그 두툼함이 남다릅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CODE 23보다는 가늘어서 귀에 착용했을 때의 부담이 적다는 겁니다. 분명히 굵은 IEM 케이블이기는 하지만, 부피가 이펙트 오디오의 8심 케이블 정도라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참고 : CODE 23은 16.5 AWG 동선을 2심으로 만든 제품입니다. AWG는 American Wire Gauge의 약자이며 숫자가 작을수록 실제 굵기가 큽니다.
퓨전 1은 소리가 화려한 케이블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 뿐만 아니라 외관도 무척 화려한 케이블입니다.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이어폰의 전선으로도 뭔가 예술적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퓨전 1의 소리에서 동선 부분이 큰 역할을 하지만, 결정적 음색을 만들어내는 선재가 금이므로 커넥터의 플러그와 Y-스플릿 파트도 금빛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게다가 이 금빛도 단일 색상이 아닌 두 가지 농도로 배치해서 더욱 화려한 인상을 줍니다.
이펙트 오디오 케이블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ConX와 TermX가 기본 포함됩니다. 이어폰 쪽 커넥터를 간단히 교체하는 ConX는 2핀, MMCX가 들어 있으며, 기기 연결용 커넥터를 교체하는 TermX는 2.5mm, 3.5mm, 4.4mm를 모두 제공합니다. 이렇게 커넥터 호환성을 갖춰두면 비싼 케이블 하나를 여러 이어폰에 연결하면서 새로운 소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ConX, TermX는 잦은 교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무척 튼튼하기 때문에 이어폰 유저의 줄질에 더욱 큰 도움이 됩니다! (...)
SOUND
*음악을 더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바꿔준다
이어폰 케이블 분야에서 금(Gold)은 독특한 음색 효과가 있어서 이펙트 오디오의 하이엔드 모델에서 단골로 투입되는 선재입니다. 그리고 다른 커스텀 케이블 회사에서도 금선 자체를 굵게 투입하기보다는 기존의 케이블 선재에 금을 입히거나 혼합하는 방식으로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애초부터 가격 때문에 금선을 굵게 쓰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여기에 순은선을 더하면 소리의 해상도가 올라가고, 높은 비중의 동선을 혼합하면 든든한 힘과 포근한 온도를 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펙트 오디오 퓨전 1은 이어폰의 소리 변화가 상당히 큰 케이블이 됐습니다. 기본적인 소리 해상도의 향상 뿐만 아니라, 음악을 더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들리도록 바꿔주는 케이블입니다. 이런 평가를 간단히 요약하면 '음악적으로 만든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퓨전 1은 레퍼런스(기준점) 용도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애호가 여러분에게 케이블 컬렉션 중 하나로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 줄질하는 사람에게 훌륭한 첫 경험이 될 수 있음) 참고로 제가 이어폰 케이블의 비교 청취에 주로 사용하는 제품은 64오디오 A3e, 엠파이어 이어스 브라바도, 웨스톤 ES60입니다. 그리고 퓨전 1 리뷰 당시 사용하고 있던 커스텀 아트 하이브리드 3 프로(H3 Pro)도 유용한 레퍼런스 이어폰이었습니다.
*화려하게,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퓨전 1은 이펙트 오디오가 오랫동안 다양한 선재를 혼합하면서 쌓아온 소리 경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식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고난도의 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처음부터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선재가 조합된 케이블입니다. 저도 그렇게 색다른 느낌을 받은 1인이었는데요. 첫 인상이 실로 명확합니다. 아주 뚜렷하게, 소리가 밝고 화려해집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점부터 확인하고 구매 결정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것은... 음색이 밝아지는 변조가 아니라 소리를 화려하게 휘황찬란하게 빛내는 효과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퓨전 1은 여성 보컬의 예쁨을 대략 다섯 배 정도 증폭해주는 케이블입니다. 바이올린의 음이 훨씬 화사하게 되어서 오케스트라 연주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어폰의 고음에서 강물에 비친 햇빛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광택을 볼 수 있습니다. 드럼의 하이햇과 심벌즈 소리가 시원하고도 자극없이 곱게 살아납니다. 이러한 음색 효과와 고음 향상이 여러 장르의 음악에 골고루 장점이 됩니다.
이에 대한 반사적 반응으로 소리 선이 약간 가늘어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어폰의 소리가 섬세하고 현란하게 바뀌는데요. 순수 동선 케이블인 아레스 S와 비교 청취하면 체감 볼륨이 살짝 낮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아레스 S는 이어폰의 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게 원래 컨셉이니 참조해두시길!) 실제 볼륨 차이는 없겠으나, 퓨전 1에서는 소리의 피크(뾰족)와 딥(움푹)이 줄어들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동선 케이블처럼 포근하고 든든한 저음
이러한 점과는 별개로 낮은 중음부터 저음과 초저음의 영역은 마치 동선 케이블처럼 포근하고 든든한 울림이 살아납니다. 또한 저음 울림이 단단해집니다. 응답 속도가 빨라지고 펀치가 보강되는 것입니다. 저음의 느릿한 울림과 흩어지는 입자가 싹 정리되면서, 짧게 끊어서 확실하게 때리는 느낌으로 바뀝니다. 낮은 중음에도 동일한 영향이 있고요. 중.저음의 불필요한 잔재가 사라지는 것은 좋은데 소리의 잔향이 제거되면서 감성이 줄어드는 면도 있습니다. 제가 사용해본 이펙트 오디오 케이블들은 대부분 잔향을 줄여서 정확도를 올리는 편이었으니 선택에 참조해두시면 좋겠습니다.
*뚜렷한 해상도 향상, 공간의 확장, 초저음 보강
고가의 커스텀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해상도 뚫기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이어폰 케이블이 좋은 선재를 다량으로 사용하면 저항이 낮아지는 효과를 포함해서 여러모로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비싼 IEM 케이블이라면 처음 교체했을 때부터 체감되는 소리 해상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굵직굵직한 구렁이 케이블 퓨전 1도 그러합니다. 첫 청취부터 해상도 뚫기 효과가 뚜렷하며 소리가 깨끗해짐을 바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고음과 초저음이 늘어나면서 심리적 공간이 확장되는 것은 또 신기한 현상입니다. 간단히 5~10만원 범위의 기본 케이블과 비교하면 소리 공간이 더 넓어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레스 S와 비교해도 20~30% 정도의 공간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짐작하건대 정전형 드라이버로 초고음을 내거나 다이내믹 드라이버로 초저음을 보강하는 하이브리드, 트라이브리드 이어폰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초고음은 명확한 음파가 아니라 '기운'으로 감지하는 것이니 여러분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으나, 퓨전 1의 초저음 보강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100Hz 아래의 깊고 낮은 저음 진동이 귀 아래로 깨끗하게 펼쳐지는 것을 느낍니다. 케이블이 이어폰의 소리를 더욱 피라미드 형상에 가깝게 만들어줍니다. (*초저음이 제일 크고 그 위로 저음, 중음, 고음, 초고음이 순차적 비중으로 배치되는 모양새)
*점성 높은 액체처럼 쫄깃한 질감을 더해준다
소리 질감이 매끈하게 다듬어집니다. 점성이 높은 액체처럼 쫄깃한 감촉이 생깁니다. 이것은 퓨전 1의 복합적 선재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효과로 보입니다. 혹시 멀티 BA 이어폰을 쓰면서 각 주파수 영역의 최적화에 만족하지만 조금 가벼운 기체의 느낌이 아쉽다면, 이 케이블을 더하는 것으로 아쉬움이 즉시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풀레인지로 쓰거나 중.저음 재생에 쓰는 이어폰이라면 중.저음의 감촉이 더욱 곱게 되어서 만족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 정도까지 소리 변화를 즐기고 나니... 저도 앞으로는 구렁이 케이블만 주목하게 될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아니, 사실 이어폰 케이블의 구렁이화는 이미 시작됐으며 저는 하나씩 직접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 퓨전 시리즈는 또 얼마나 굵고 아름다울지 기대하겠습니다. ■
*이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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