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1. 15:58ㆍ케이블
"이어폰의 케이블에서 이렇게 다양한 선재를 조합한 사례가 또 있을까? 극소수 한정판 IEM 케이블 '아르테미스'는 금을 입힌 은선, 금을 입힌 금은 합금선, 무산소 동선, 금을 입힌 동선, 팔라듐을 입힌 동선으로 고해상도와 포근함이 공존하는 소리를 만든다."
글.사진 : 루릭 (blog.naver.com/luric)
주변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헤드룸에서 감동적인 소리를 가장 가깝게 듣는 경험 - 이것이 초고가 이어폰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도 음악을 들으려면 밀폐된 오디오룸 안에 앉아 있어야 한다. 대형 헤드폰은 나만 들을 수 있으며 이어폰보다 큰 규모의 소리를 들려주지만 역시나 '이동을 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다. 한 편, 귓구멍에 바로 끼우는 이어폰은 스피커도 헤드폰도 제공할 수 없는 '개인의 음향적 독립'을 제공하므로 그만큼의 가치가 생긴다. 예를 들면 강변으로 나와 도시의 야경을 보면서 엄청나게 깨끗한 소리로 음악을 듣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여러분도 꼭 접해보시길 권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어폰 한 개에 수백 만원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이어폰 매니아들은 필수적인 액세서리 때문에 더욱 큰 지출을 시도하게 된다. 수백 만원대의 커스텀 케이블이 신용 카드에 슬금슬금 촉수를 뻗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하이엔드 이어폰들은 기본 케이블도 좋은 것으로 담아주는 추세이지만, 훨씬 좋은 선재와 높은 완성도를 지닌 하이엔드 케이블이 있다면 하이엔드 이어폰의 잠재력을 제대로 뽑아낼 수 있다. 이는 한 번이라도 직접 체험해보면 떨칠 수가 없는 유혹이다.
이펙트 오디오(Effect Audio)는 이어폰 매니아들의 이러한 흔들림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회사라고 하겠다. 시중에는 생각보다 많은 IEM 케이블 메이커들이 있는데 이펙트 오디오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성공한 사례이며, 그 성공을 바탕으로 선재 조합의 온갖 실험을 해대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본인이 특권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IEM(인이어 모니터) 케이블이 선재 조합의 자유를 누리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극소량의 한정판 모델로 한국에서만 출시하는 특수 모델 - '아르테미스(Artemis)'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디테일을 알고 나면 가격이 보인다
아르테미스는 한국 유저들을 대상으로 극소수만 제작되는 한정 품목이며 가격도 매우 비싸다. 4심 모델은 224만원, 8심 모델은 374만원에 이른다. 그리고 이 케이블 모델 하나를 위해서 이펙트 오디오의 대표가 한국으로 날아와 프리젠테이션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폰에 끼우는 전선 때문에 이렇게 큰 돈과 행사가 투입되는 게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아르테미스가 비싼 이유는 몸 속에 값진 귀금속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이펙트 오디오 대표가 한국으로 오는 이유는 아르테미스로 인해 이 회사가 기념할 만한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IEM 케이블의 선재 실험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가장 복합적인 형태로 실현한 것이 아르테미스다.
제품 박스는 이펙트 오디오의 다른 케이블 모델과 비슷하다. 엔트리 모델인 아레스 S도 고급 패키지로 구성하고 있으니, 아르테미스의 패키지 디자인도 상향 평준화의 일부라고 하겠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박스 그림에 있는 금빛 포인트다. 이 케이블의 중요한 주제가 '금(Gold)'이라서 그림 속의 무기와 액세서리, 사슴의 뿔이 모두 금색으로 뚜렷하게 장식되어 있다.
박스 속에는 케이블 본체를 캐링 케이스가 있으며, 이어폰 쪽 커넥터를 교체하는 ConX와 재생기 쪽 커넥터를 교체하는 TermX의 기본 세트가 포함된다. 아르테미스의 캐링 케이스를 먼저 살펴보면... 소재부터 많이 고급스러움을 알 수 있다. 케이스 외부의 뽀송한 회색 부분은 알칸타라 소재이며 상단의 검정색 부분은 프랑스산 염소 가죽이라고 한다. 케이스 측면을 열면 두툼한 쿠션 속의 공간에 아르테미스를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가죽의 스티치 및 버튼 등의 부품은 모두 금색으로 만들어두었다. 이 케이블은 다양한 선재를 담고 있지만 근본적 주제가 '금(金)'이기 때문이다.
이펙트 오디오 케이블의 ConX, TermX는 비싼 케이블을 여러 이어폰에 연결하면서 쓸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액세서리다. 개인적으로도 아레스 S를 구입해서 사용 중이고, 그동안 이펙트 오디오 제품들을 본인의 커스텀 이어폰들에게 연결하면서 느낀 점은, 특히 ConX의 내구력이 좋다는 것이다. 2핀 커넥터는 다른 제품들보다 더 단단해서 마음이 편해지고, MMCX 커넥터는 결합이 튼튼해서 흔들리거나 회전하지 않으니 접촉 불량이 없다.
TermX도 단단하게 만들어졌으며 커넥터 교체도 쉽게 되어 있다. 베이직 세트만 해도 2.5mm, 3.5mm, 4.4mm를 모두 제공하니 대부분의 DAP와 헤드폰 앰프에 대응할 수 있겠다. 딱 하나 주의할 점은, 커넥터를 결합할 때 4핀의 위치를 잘 맞추는 것이다. 4핀 한 쪽에 있는 돌기를 찾아서 플러그의 홈과 맞춰주면 된다.
아르테미스의 외모를 보면... 뭔가 휘황찬란한 느낌은 아니다. 케이론(Chiron)에서 보았던 짙은 고동색(매트 클리어 블랙)과 아레스 S 등에서 보았던 투명 피복의 동선 같은 것이 있고, 각종 플러그 부분은 무광택 회색처럼 보인다. 그리고 Y-스플릿과 재생기 연결 플러그에는 이어폰 가이아(Gaea)와 비슷한 목재 패턴이 있다. 하지만 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나면 이 모든 요소가 럭셔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짙은 고동색선 속에는 금과 은이 들어 있고, 투명선 속에는 구리, 금, 팔라듐이 들어 있으며, 플러그 부분의 무광택 회색은 모두 티타늄이다. 목재 패턴은 수작업으로 만드는 공예품이라서 마치 지문처럼 각자 다른 패턴을 보여준다.
전선 부분을 더 가까이 살펴보자. 매트 클리어 블랙 케이블 속으로는 금 도금 은선과 금 도금 금은 합금선이 들어 있다. 순은선에 금을 입혔고, 금과 은을 섞은 후에 또 금을 입혔다. 그래서 피복 내부로 은빛의 금속이 은근하게 보인다. 클리어 케이블 속에는 무산소 동선, 금 도금 동선, 팔라듐 도금 동선이 혼합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냥 동선 같지만 아주 가깝게 보면 구리의 색깔 틈으로 금의 황색과 팔라듐의 은색이 섞여 있다. 동선에 금을 입히고 팔라듐을 입히면 도대체 어떤 소리가 만들어질까? ...간단히 생각해봐도 이렇게 복합적인 선재의 IEM 케이블을 많이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케이블의 무게가 가벼운 편이며 피복이 무척 유연해서 손으로 다루기에 편하다. 휴대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걸어다니면서 음악 들을 때에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아르테미스는 4심 버전과 8심 버전이 있는데 8심도 가벼워서 귓바퀴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본인도 아르테미스 4심과 8심을 밖에서도 사용해봤는데... 역시, 눈에 띄지 않는 게 마음 편하다! 이어폰에 굵직한 8심 케이블을 연결하고 다니면 반드시 남들 눈에 걸리기 마련이지만(-_-), 아르테미스의 차분한 색상과 간결한 존재감은 생활 속에서 더욱 편안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케이블의 외모처럼 소리 성향도 차분하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SOUND
*비싼 만큼 좋지만, 금이 만드는 효과를 짚어둘 것
이펙트 오디오의 금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금은 은보다 전도성이 떨어지지만 이어폰 케이블에 적용하고 소리를 들어보니 여러 가지 특징이 나온다. 금으로 만들어내는 소리는 다른 선재와 차별화되는 에너지가 있으며, 고음과 높은 중음을 보강하여 보컬 묘사에 좋고, 음 분리 능력과 디테일의 향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발견은 호루스(Horus), 센츄리온(Centurion) 같은 명작으로 이어진다. 아르테미스도 이 영향을 받아서, 네 가지 선재 중 금 도금 금은 합금선은 센츄리온과 동일한 것을 사용했다.
이펙트 오디오는 각 케이블 모델마다 뚜렷한 사운드 시그니처를 지정하고 있다. 케이블의 소리 영향은 계측보다 사람의 청각으로 발견하는 것이므로, 케이블 하나의 소리 특징이 명확하다는 것은 제작자가 소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회사의 수많은 케이블을 직접 사용해온 본인의 기준에서도 모든 케이블 모델이 명확한 소리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르테미스의 경우는 더 따뜻하면서도 균형 잡힌 소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매력적인 중.저음도 주요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도를 지니고 만들어진 것을 현실적 유저의 시선에서 평가한다면... 아주 단순한 결론이 나온다.
아르테미스는 비싼 케이블답게 처음부터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해상도가 뚜렷하게 향상된다. 100만원대 커스텀 이어폰에 연결해서 들으니 200만원대 이상의 이어폰이 된 듯한 소리 느낌이 온다. 이 정도 퍼포먼스라면 400~500만원대 괴물급 이어폰들과 잘 어울릴 것이다. 현재의 IEM 케이블 시장은 품질과 가격의 비율이 거의 일치하는 편이고, 그 중에서도 이펙트 오디오는 가격의 계급(-_-)이 명확한 브랜드에 속한다. 비싼 모델을 사면 비싼 만큼의 기본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테미스가 어떤 물건인지 생각해본다면... 음색의 기준점을 추구하는 케이론보다는 변주 효과가 큰 편이라고 하겠다.
*네 개의 중요한 속성
1) 고음이 선명하며 입자가 매우 곱게 들린다. 그런데 밝은 느낌이 없으며 오히려 고음의 선이 굵게 들린다. '고해상도 = 밝은 음색'이라는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분명히 해상도가 높은 소리인데 머리 속에서는 짙은 갈색을 떠올리게 된다. 끝판왕 케이블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 컬렉션을 하고 있다면, 아르테미스의 고음이 주는 새로운 경험이 꽤 즐거울 듯하다.
2) 저음이 유난히 굵고 포근하게 들린다. 다양한 선재 혼합이 만드는 현상일 터인데... 체감으로는 하이엔드 동선 케이블이 떠오른다. 뚜렷한 저음 보강 효과가 있어서 이어폰의 음이 포근해진다. 저음의 양을 많이 늘리는 것이 아니라, 높은 저음의 펀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초저음의 울림을 풍부하게 증폭해서 청각이 편안해진다. 이어폰의 소리를 오래 들을 수 있게 만든다.
3) 중음은 음색이나 선 굵기의 측면에서 변화가 적은 편인데 위치가 조금 달라진다. 중음이 더욱 평탄하게 다듬어지면서 위치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무대 중앙으로 놓이도록 정확히 보정된다.
4) 심리적 공간의 면적을 넓혀준다. 주파수 응답 형태의 미묘한 변화가 내는 효과로 보인다. 케이블에서 초고음과 초저음을 늘려주고 저음 전체를 든든하게 보강하니, 주파수 응답에서 약간의 굴곡이 생기고 청취자는 심리적으로 더 넓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소리가 살짝 멀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4심과 8심 버전의 차이점은?
아르테미스 8심 버전은 4심보다 소리 선이 훨씬 굵으며 힘이 좋고 공간이 더 많이 확장된다. 마치 소출력의 DAP 헤드폰잭으로 듣다가 고출력의 거치형 헤드폰 앰프로 바꾼 것처럼 '파워'의 차이가 크게 나온다. 또한 바로 윗 문단에서 설명한 네 가지 속성이 8심 버전에서 모두 업그레이드된다. 롤 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의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의 효과와도 같다. 그런데 4심과 8심을 비교 청취해보니... 자금 문제를 떠나서 일부러 4심을 선택할 만한 이유도 보인다. 8심의 소리에서 중.저음의 비중이 더욱 높은 탓에 상대적으로 4심의 고음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또한, 걸어다니면서 이어폰을 사용한다면 무게가 훨씬 가벼운 4심 버전이 편하다. 아르테미스는 8심도 무게가 가벼워서 이동 중 사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4심보다 두 배 굵다.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음색 보정 효과
이어폰의 밝은 음색을 중립적이거나 살짝 어두운 정도로 가라앉혀준다. 아르테미스가 저음 보강형 케이블이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복합적인 선재 구성이 고.중음 영역의 음색을 짙은 갈색으로 만든다. 금발 염색한 머리를 차분한 갈색으로 되돌려주는 듯한 음색 보정 효과다. 하이엔드 이어폰 중에서 정전형 트위터, BA 트위터의 고음이 유난히 밝아서 신경 쓰인다면 아르테미스가 딱 어울리겠다.
*심리적 즐거움을 위한 대중적 고급 요리
이어폰이든 케이블이든, 소리의 느낌은 자석의 양쪽 극처럼 대칭을 이루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빠르고 건조한 성향'과 '느릿하고 포근한 성향'으로 나누면 제품 선택이 더욱 쉬워질 수도 있다. 아르테미스는 느릿하고 포근한 성향이며 짙은 갈색과 고해상도를 동시에 갖추는 '선재 혼합의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의 분석이 아니라 음악의 감상을 위해서 심리적 즐거움을 노리고 만들어낸 고급 요리라고 하겠다. 단, 소수 미식가를 위한 천연 재료 중심의 요리는 아니다. 누구나 처음으로 맛을 보는 순간 반할 수 있는데, 특유의 편안함과 은은함이 있어서 그 후에도 오랫동안 맛을 누릴 수 있는 대중적 성격의 요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테미스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서 조리된 금, 은, 동, 팔라듐의 혼합체라는 점이 큰 의미를 지닌다. ■
*이 리뷰는 셰에라자드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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