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9. 11:37ㆍ이어폰
글.사진 : 루릭 (blog.naver.com/luric)
음향 기기를 설명하고 주관적 감상평을 쓰는 것이 저의 직업인데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취미처럼 보이는 이 직업 속에서도 '개인적 흥미로 하는 취미 항목'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7HZ 소너스(Sonus)'라는 이어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올해 9월 11일에 제품을 받아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두 달짜리 롱텀 리뷰가 되겠습니다. 취미로 쓰는 글이므로 정식 리뷰보다 분량이 짧으니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_-)/
저는 7HZ라는 회사의 소리가 뭔가 좋을 것 같다는 직감 때문에 후기를 쓰게 됐습니다. 고료 없이 저렴한 이어폰 한 개를 받는 일이지만 이 놈의 직감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저의 레이더망 바깥에 있는 이어폰들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상문은 사전 정보의 조사 없이 바로 작성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구글에 7HZ Sonus로 검색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싼 값에 놀라실 겁니다. 아직 정식으로 딜러 계약을 맺은 국내 판매처는 없는 듯하며, 제가 받은 제품도 해외 배송으로 도착한 것입니다.
이 제품은 가격에 비해 패키지 구성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작은 번들 박스에 이어폰 하나랑 이어팁 세 쌍만 넣은 게 아니라, 고급지고 튼튼한 박스에 가죽 케이스, 다수의 이어팁, 필터 세트까지 넣어두었습니다. 특히 이어팁과 필터 세트가 마음에 드는데요. 7HZ 소너스는 노즐 속에 흰색 필터를 넣고 끝부분에 금색 그릴을 더한 구조입니다. 여기에 쓰는 필터와 그릴을 두 쌍씩 넣어줬으니 이어폰을 오~래 쓸 수 있겠습니다. 또한 가죽 케이스도 대충 만든 물건이 아니라서 실제로 고급스럽게 이어폰을 담고 다닐 수 있습니다.
실리콘 이어팁은 바깥 부분이 짙은 청색인 것과 흰색인 것으로 두 가지 종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자신의 소리 취향과 귀 모양에 맞추어 이어팁을 선택하면 됩니다. 저는 흰색 실리콘 이어팁의 중간 사이즈를 사용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정색 이어폰에 흰색 케이블을 더하는 것이 별로인데... 그래도 기본 케이블이 제법 독특합니다. 은 도금 동선의 4심 구조인데 각 선을 나란히 펼쳐둔 플랫 디자인입니다. 줄 꼬임 현상이 아예 없으니 케이블을 둘둘 말아서 보관할 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본 케이블 커넥터는 2핀과 3.5mm 규격이며 이어폰 쪽의 플러그가 평평해서 케이블 교체도 쉽습니다. 기본 케이블의 품질도 충분히 좋지만, 소너스는 소리 잠재력이 매우 커서 다른 케이블로 바꿔보는 것도 추천하겠습니다. 요즘 중국 회사들이 만드는 '빅 가성비'의 이어폰용 케이블이 많으니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소너스의 이어폰 유닛은 자신의 가격을 부정하는 것처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두툼한 알루미늄을 절삭해서 만든 페이스 플레이트, 내부의 금빛 도장된 드라이버가 예쁘게 비치는 반투명 쉘에서 인이어 모니터(IEM)의 시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페이스 플레이트에 새겨진 두 줄의 은빛 라인과 7HZ 로고가 깨끗해서 이어폰이 조금도 싸게 보이지 않는군요.
페이스 플레이트의 테두리가 상당히 예리하지만 귀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커스텀 핏처럼 생긴 쉘이라서 착용이 편안합니다. 이어폰 유닛의 2핀 커넥터에서 한 쪽 핀 옆에 빨간 점을 찍어둔 점도 눈에 띕니다. 다른 IEM 케이블을 끼울 때 극성 맞추기가 편하도록 배려해둔 모양입니다.
SOUND
7HZ 소너스는 드라이버 감도가 높은 이어폰이라서 DAP의 헤드폰잭에 바로 끼워도 낮은 볼륨으로 빵빵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설명하겠지만 소리 성향이 '고음이 선명한 저음형 올라운더'라서 스마트폰과 함께 사용하기에도 좋습니다. 음악 감상에 제일 잘 맞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게임과 영화를 접할 때에도 잘 어울리니 '생활용 이어폰'으로 써도 됩니다.
*자연스러운 하이브리드 : BA와 DD 드라이버의 질감 차이가 없다
첫 인상에서 BA + DD 하이브리드 이어폰의 일반적(?) 특징을 미세하게 보여줍니다. 고음에는 밸런스드 아머처(BA) 트위터의 샤프하고 세밀한 느낌이 있고, 낮은 중음과 저음에는 다이내믹(DD) 우퍼의 밀도 높고 강한 울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너스는 이런 '하이브리드의 맛'이 매우 연하게 나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될 만큼 희박합니다. BA 드라이버의 고.중음 영역까지 높은 밀도가 유지되어서 질감 차이가 나지 않으며, DD 우퍼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여기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7HZ에 대한 직감이 적중한 것입니다. 7HZ라는 회사가 히트작이 많으므로 애초부터 뻔한 결론이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 후, 저는 왠지 감성적이고 편안한 음악 감상을 원할 때마다 다른 커스텀 이어폰들을 놔두고 소너스를 집어들게 됐습니다.
*든든하고 포근한 저음 속에서 나오는 고해상도의 고.중음
고.중음 해상도가 높게 들리되 청각 자극이 없도록 적당히 주물러둔 소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든든하고 포근하게 강조된 저음이 더해집니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잔향이 많은 소리이며 고.중음의 음 분리 효과와 디테일 묘사도 훌륭합니다. 또한 소리 선이 굵고 뚜렷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음에서 높은 부분인 7~10kHz 영역을 살짝 가늘고 화사하게 만들어두었으며, 저음 영역은 무척 두텁고 단단한 고밀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저음은 묵직하게 고막을 누르는데, 중음은 굵직하고 충실하며, 고음은 밝지 않은 음색으로 높은 선명도를 지닙니다. 고음 해상도가 높지만 낮은 중음과 저음의 따뜻한 느낌이 더욱 강해서 전체적으로는 중립적이거나 조금 어두운 음색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아주 깊고 무겁게 때리는 높은 저음의 타격, 부드러운 진동을 만들어서 머리를 울려주는 초저음이 있습니다.
*소리의 잠재력이 놀라운 수준 : 케이블 교체로 추가 이득을 볼 수 있다
소너스는 케이블 업그레이드의 효과가 매우 큰 이어폰이기도 합니다. 잘 찾아보면 불과 1~5만원으로도 사기급 품질을 보이는 가성비 IEM 케이블이 있으니 한 번 바꿔보시길 권합니다. '가격이 싸도 기본 성능이 높은 이어폰'은 하이엔드 IEM 케이블을 연결하면 소리 잠재력이 확 해방되기도 하는데 소너스가 딱 그렇습니다.
제가 466만원짜리 이펙트 오디오 케이론을 빌렸을 때 장난 삼아서 소너스에도 연결해봤는데요... 소리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이어폰 같았습니다. (-_-); 초고음과 초저음이 크게 확장되어서 공간이 확 넓어지고, 소리의 해상도가 격하게 높아지면서 저음의 펀치도 더욱 명확해집니다. 이런 현상은 재생기와 앰프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소너스는 학생 유저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의 이어폰인데 소스 고급화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물건은 입문용으로 두기에는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이어폰입니다.
*요즘 보기 드문 '좋은 잔향감'의 이어폰
소너스의 특기는 '아주 듣기 좋은 잔향'입니다. 소리가 재생되면 고운 가루처럼 고.중음의 향기가 퍼지며 저음에서도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것이 음향의 정확도 관점에서는 불필요한 잔재 취급을 받겠으나, 음악의 감성적 측면에서는 굉장히 좋은 점입니다.
요즘 나오는 이어폰들의 흐름은 '깔끔 건조'인 듯합니다. 다들 빠른 응답과 낮은 왜곡율을 지향하는데, 그만큼 소리의 감정 증폭이 줄어드는 면도 있습니다. 저는 음향 기기의 사운드 튜닝을 할 때 의도적으로 소리를 조금 풀어지게 해서 듣기 좋게 만드는 기술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소너스를 만든 사람에게 바로 그런 실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BA의 고.중음과 DD의 저음이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지속적으로 풍부한 잔향도 만들어주니... 듣는 이의 귀가 즐거워지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7HZ 소너스는 취향 차이가 명확한 이어폰이 됩니다. 적어도 기본 케이블을 연결해둔 상태에서는 그렇습니다. 고.중음의 향기와 저음의 따뜻한 연기는 소리 정확도를 추구하는 유저에게는 불필요한 잔재이며 해상도를 낮추는 방해물이 됩니다. 게다가 이 제품은 저음의 포근함이 강해서 고.중음과 어느 정도 혼합되기 때문에 '소리의 흐린 막'을 싫어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의 감성을 추구하는 유저에게는 이런 점들이 자꾸만 음악을 듣고 싶어지게 하는 중독적 요소입니다. 소너스는 아늑하고 편안한 소리로 듣는 이를 쉬게 하는데, 고음에서 시원하고 선명한 느낌을 줄 때가 있으며, 항상 저음의 단단함으로 심장을 두드려주는 저음형 올라운더 이어폰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
*이 리뷰는 해당 브랜드의 제품 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어폰' 카테고리의 다른 글
iKKO High-Ear C, '낮은 음의 맛'을 알려주는 4 BA 1 DD 이어폰 (0) | 2023.12.11 |
---|---|
엘리시안 어쿠스틱 랩 - 디바, 어나이얼레이터 (0) | 2023.11.28 |
벨로스 오디오 X-시리즈, 3D 프린팅과 모듈러 설계로 만드는 Pro 커스텀 이어폰 (0) | 2023.11.07 |
시브가 나이팅게일, 고음 잠재력이 해방된 풀레인지 평판형 이어폰 (0) | 2023.10.31 |
파이널 VR2000, 영화 게임 사운드의 흐린 막을 걷어주는 이어폰 (0) | 2023.10.30 |